백범로는 인천 서구 가좌동에서 남동구 장수사거리까지를 잇는 총연장 10.9km의 도심 간선 도로입니다.
인천의 동서를 가로지르는 도로에 김구 선생의 호를 붙인 것은 백범이 인천과 특별한 연고를 가진
민족 지도자이기 때문입니다. 백범 김구는 그의 나이 20세 때인 1896년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듣고 분노하여 일본군 중위 쓰치다를 살해한 이른바 ‘치하포 사건’으로 인천감옥에 2년간 수감되었고, 또한 1911년
안악사건으로 5년간 투옥될 때 다시 인천 감옥으로 옮겨짐으로써 총 2번의 인천 수감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는 서구와도 특별한 인연이 있는데 바로 시천동 진주유씨 가문의 유완무 선생입니다.
김구 선생이 치하포 사건으로 인천 감리서에 있을 때 유완무 선생이 용감한 청년 13명을 뽑아
곳곳에 불을 지르고 김구를 구출해 내는 계획을 짰습니다.
더불어 청년 시절 김창수에게 ‘김구’라는 이름과 호를 지어준 이가 바로 유완무 선생입니다.
수감 당시 김구 선생은 ‘인천 감옥에서 수형생활을 하는 동안, 인천 개항장을 통해 유 입된 신문물을 익히며
항일운동가로서의 사상을 정립했다’고 기록하고 있듯이 인천 사람들 의 관심과 배려로 탈옥할 수 있었고
훗날 불굴의 민족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었던 자양분도 인천에서 얻었다고 합니다.
백범로의 현재
인천의 백범로는 인천대공원 앞 장수사거리에서 출발하여 장수초등학교, 건설기술 교육원, 만수주공 사거리, 간석사거리를 지나 간석오거리의 경인로를 간석고가교로 통과 후 경인철도 굴다리를 지나갑니다.
다시 벽돌막사거리, 십정1동을 거쳐 십정사거리, 나들목을 지나 인천대로와 교차하는 가좌 육교를 지나갑니다. 그리고 서구 경계를 따라가다가 가좌동 현대제철소 북문 근처에 이르러 끝나게 됩니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로 매년 6월 26일에는 백범 김구 선생의 추모식이 거행됩니다.
인천의 허리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백범로가 그의 숭고한 민족정신도 함께 아로새겨져
기억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