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관리담당자
- 담당부서 : 행정복지센터
- 담당팀 : 오류왕길동
- 전화 :
07.01
조례 1564호에 의거 검단5동을 오류왕길동으로 변경09.02
검단1동의 오류동, 왕길동이 검단5동으로 분동됨09.01
검단1동에서 검단4동 분동09.01
검단1동에서 검단3동이 분동01.01
검단동이 검단1동과 검단2동으로 분동03.01
인천광역시 서구에 편입되면서 8개 법정동으로 검단동이 되고, 검단출장소가 병설됨04
김포군의 검단면, 마산면, 노장면을 통합하여 김포군 검단면이 되었음(일제의 행정구역 통폐합)고려때는 김포현, 조선조 태종14년(1414) 8월에는 개칭된 금양현에, 동년 10월에는 다시 김포현에 속했다가 인조 10년(1632) 금릉군으로 개칭될때 금릉군 조선말 김포현에서 김포군으로 개칭 중종 25년(1530)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아직 리(里)의 규모에 그쳤던 김포현 마산리, 검단리, 노장리가 언제 면으로 승격되었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정조 13년(1789)에 전국의 가호와 인구를 집대성한 『호구총수』에는 검단면, 노장면, 마산면의 세개 면 지역으로 나타나 있음.
검단
서구사(서구사편찬위원회, 2004)에 따르면 『신증동국여지승람』등을 비롯한 옛 문헌에서 검단의 표기는 ‘검(儉), 금(衿), 단(旦) 곡(谷)’ 등으로 일정치 않게 나타났다고 한다. 이는 검단이라는 글자가 훈(訓)으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음차(音借)한 것으로 검-금은 모두 ‘?’계(系)의 어휘로 신(神)또는 왕(王)에 해당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 현 금곡동 마을 산 기슭에 ‘검데이’이 부르는 곳이 있는데 검단 > 검데이로 변천한 것으로 추정되거니와 검단은 ‘?단’의 변형으로 신(神)또는 존장을 의미하는 ‘?’과, 곡(谷), 즉 마을을 의미하는 말의 결합이라고 보고 있다. 즉, 검데이는 ‘신 또는 존장의 마을이나 신에게 제사하는 마을’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후대에 이르러 검단의 훈(訓)이 좋은 글자로 바뀌어 검을 검(黔), 붉을 단(丹)으로서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으며, 이는 수도권매립지 조성이전 검단의 서해안 일대가 개펄로 되어 있어 석양에 붉게 노을지면 홍학(紅鶴)의 날개와 같다하여 의미가 달라진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오류동
조선조 중엽 이전, 이 마을에는 오동나무숲이 많았으며, 그 옆에 버드나무 한 그루가 서 있어 이들 나무 이름을 따서 ‘오류리’라 칭하였다고 전하다. 1914년 행정구역폐합에 따라 반월촌, 봉화촌, 대촌을 병합하여 오류리라고 했다.
왕길동
조선조 중엽에 어느 풍류객이 이 마을을 '旺 吉'이라고 작명하여야 이 마을에 덕(德)이 있고 생활이 풍요로 울 것이라고 하여 '왕길' 마을이라 칭하게 되었다고 전한다. 왕길또는 외리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소왕길리, 안동포, 동사곶리를 병합하여 왕길리라 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