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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이야기

  1. 아동친화도시 서구
  2. 서구 이야기
  3. 우리동네이름

우리동네 이름

  • 인천의 서구 지역은 옛날 서곶으로 불리던 곳입니다.

    서곶은 '서쪽으로 길게 뻗은 해안'이라는 뜻으로 서곶의 ‘곶’은 바다나 호수로 길게 뻗은 육지의 끝부분을 가리킵니다. 오늘날의 검단지역을 제외한 지역 대부분이 옛 서곶에 속합니다.

  • 행정동 : 주민들이 사는 지역을 민원발급, 주민관리 등의 행정을 편리하게 관리하기 위하여 주민센터 행정단위로 나눈 구역
  • 법정동 : 예로부터 전해온 지역(동)의 이름으로 나눈 법률로 정한 행정구역
  • 행정동

    인천 서구 행정동 지도. 상단부터 행정동구분 : 상단부터 불로대곡동, 검단동, 오류왕길동, 당하동, 원당동, 검암경서동, 연희동, 청라3동, 청라2동, 청라1동, 가정1동, 가정2동, 가정3동, 신현원창동, 석남1동, 석남2동, 석남3동, 가좌1동, 가좌2동, 가좌3동, 가좌4동
  • 법정동

    인천 서구 법정동 지도. 상단부터 대곡동, 금곡동, 마전동, 불로동, 오류동, 왕길동, 당하동, 원당동, 백석동, 경서동, 청라동, 검암동, 시천동, 연희동, 공촌동, 심곡동, 가정동, 원창동, 신현동, 석남동, 가좌동대곡동 금곡동 마전동 블로동 오류동 왕길동 당하동 원당동 백석동 경서동 검암동 시천동 연희동 공촌동 심곡동 가정동 원창동 신현동 석남동 가좌동청라동

[자료출처 : 서구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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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곡동 大谷洞클 대(大) / 골짜기 곡(谷)

큰 골짜기에 위치한 마을이라 하여 한골, 황골, 황곡 또는‘대곡(大谷)’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세종실록(世宗實錄)] 지리지(地理志)에 나오는 기록을 보면 고려시대에 중국과 약쑥을 거래하던 무역상인들이 여인숙이 많은 큰 골짜기 동네에서 머물렀다고 전하여지는데 그곳이 바로 지금의‘대곡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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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곡동 金谷洞쇠 금(金) / 골짜기 곡(谷)

옛날 풍수지리학자가 이 마을을 지나가다가 마을 뒷산에 쇳돌이 매장되어 있을 것이라고 한 후부터 ‘금곡리’라 했다고 합니다. 이 마을에서는 일제강점기 말까지 금을 캤으며 광복 후에도 많은 철을 캐내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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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전동 麻田洞삼 마(麻) / 밭 전(田)

조선시대 후기까지 마산면(馬山面)이었다고 하며, 옛날에 이 지역에서 삼을 많이 재배했기 때문에 ‘마전(麻田)’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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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로동 不老洞아닐 불(不) / 늙은이 노(老)

조선시대 후기에는 마산면(馬山面)에 속한 마을이었다고 하며, 전설에 따르면 동네 앞산인 만수산(萬壽山)에 산삼을 비롯한 각종 약초가 많아 어느 노인이 이 산에 올라 산삼과 약초를 채취하여 나물로 먹은 후부터는 장수하였다 합니다. 그 후부터 만수산에 불로초가 있다는 소문이 퍼져 다른 지역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불로초를 캐러 왔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이 마을을 ‘불로(不老)’마을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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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동 梧柳洞오동나무 오(梧)/ 버들 류(柳)

조선시대에 이 마을에는 오동나무숲이 많았으며, 그 옆에 버드나무 한 그루가 있어 이들 나무 이름을 따서 ‘오류리’라 불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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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길동 旺吉洞성할 왕(旺) / 길할 길(吉)

조선시대 어느 풍류객이 이 마을을 '왕길(旺吉)'이라고 이름을 붙여야, 이 마을에 덕(德)이 있고 생활이 풍요로울 것이라고 하여 '왕길' 마을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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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하동 堂下洞집 당(堂) / 아래 하(下)

옛날에 제림산에 당(堂)이 있었고 당 아래 부락이 위치하였다고 하여 ‘당하(堂下)’라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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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당동 元堂洞으뜸(근본) 원(元) / 집 당(堂)

조선시대 초기에 이 마을에 원당(元堂)이라는 당이 있었기 때문에 행정구역명을 ‘원당’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다른 얘기로는 옛 북성산 밑이라 숲이 울창하여 수목이 풍부하였으므로 이 곳에서 생산되는 좋은 목재로 집을 지었기 때문에‘원당’이라 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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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동 白石洞흰 백(白) / 돌 석(石)

백석동이란 백석동 뒷산의 산봉오리가 흰돌로 이루어진 데서 생긴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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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서동 景西洞볕 경(景) / 서녘 서(西)

경서동이란 경명현(징맹이고개) 서쪽에 있는 마을이란 뜻에서 생긴 이름입니다. 해안에 위치했던 마을로 썰물 때는 청라도, 난지도를 걸어서 건널 수 있었다고 합니다. 고려시대부터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약쑥이 나왔다고 합니다. 지금도 쑥당이라는 말이 전해지고 있는데 이는 경서동의 옛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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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암동 黔岩洞검을 검(黔) / 바위 암(岩)

검암이란 검은 바위를 뜻합니다. 허암산(虛庵山) 서쪽 기슭에 검은 색을 띤 큰 바위가 있어 마을 이름을‘검바위[黔岩]’라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현재 서인천고등학교 담장 옆에 둘레 20여 미터 크기의 검바위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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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천동 始川洞처음 시(始) / 내 천(川)

시천동은 계양산 계곡에서 흐른 물이 시내를 만들어 시냇물이 시작되는 곳이란 뜻에서 생긴 이름입니다. 지금도 시천동에는 “시천”이란 하천이 흐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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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동 蓮喜洞연밥 연(蓮) / 기쁠 희(喜)

신라시대 높은 벼슬을 하는 사람을 모시는 여자들을 이곳에 데려와 노래와 춤을 가르쳤다고 해서 연희동이라 불러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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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촌동 公村洞공(公) / 마을 촌(村)

마을의 형태가‘公(공)’자와 같이 생겼다고 하여 생긴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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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곡동 深谷洞깊을 심(深) / 골짜기 곡(谷)

산계곡이 깊은 곳에 생긴 마을이란 뜻에서 ‘깊이울’이라 부르게 되었는데, ‘심곡(深谷)’이라는 한자어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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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동 佳亭洞아름다울 가(佳) / 정자 정(亭)

조선시대 관리인 조반이란 사람이 농사를 지으면서 시를 짓던 별장인“가정터”가 있던 곳이란 뜻에서 생긴 이름입니다. 이곳에는 6.25때 우리나라에 참전한 콜럼비아군의 참전을 기념하는 참전비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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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창동 元倉洞으뜸(근본) 원(元) / 창고 창(倉)

원창동이란 곡식을 왕께 바치기 위하여 서울로 수송하기 전에 모아두는 창고가 있던 곳 이란 뜻에서 생긴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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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동 新峴洞새로울 신(新) / 고개 현(峴)

원창동에 곡식을 서울로 운반하기 전에 보관하는 창고가 있었는데 이곳에 새로운 고개길을 뚫어서“새고개”라고 부른 것이 ‘신현(新峴)’이라는 한자어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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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남동 石南洞돌 석(石) / 남녘 남(南)

원래 부평군 모월곶면 고잔리, 가정리, 신현리였으나, 1977년 석남, 가정, 신현동 일부지역이 합쳐지면서 석남동이 되었으며 “봉우재”, “번지지”, “가정”, “고잔”, “웃우물”등의 자연마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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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좌동 佳佐洞아름다울 가(佳) / 도울 좌(佐)

“가마굴”, “능안”, “건지골”, “살구지”, “네집네” 의 자연마을이 있었으며 원래 부평군 모월곶면 가좌리로 불리워지다가 1940년 인천에 속하게 되었으며, 1946년 가좌동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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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단동 黔丹洞검을 검(黔) / 붉을 단(丹)

“검다”의 검(黔)과 “붉다”의 단(丹)자가 합쳐진 말로 서해안 일대가 개펄로 되어 있어 “검다”의 의미로“검단”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95년 3월 1일자 행정구역 바뀌면서 인천광역시 서구 검단동으로 변경되었으며, 현재 검단1동, 검단2동, 검단3동, 검단4동, 검단5동의 행정동이 있으며 마전동, 당하동, 원당동, 불로동, 대곡동, 금곡동, 오류동, 왕길동의 8개의 법정동으로 이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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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라동 靑羅 푸를 청(靑) 새그물 라(羅)

서해안에 조그마한 섬이 있었는데 푸른 넝쿨과 관목들이 무수히 많아 푸른섬이라는 뜻으로“청라도(靑羅島)”라 불리었으며 서곶 주민들이 청라도가 유난히 푸른색으로 보이기 때문에 파란섬이라는 뜻으로 “파렴”이라고도 불렀다고 합니다. 1991년 간척사업으로 육지가 되었으며 2003년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