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암 정희량 유허지는 연산조의 문신 정희량이 은거하던 옛집터인데 검암동의 허암산 북쪽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는 겨우 터전만이 확인될 따름이다.
<부평부읍지>고적조에 <허암구지는 모월곶면 허암산 밑에 있는데 한림학사 정희량이 복거하면서 호를 허암이라 하였으나 뒤에 자취를 감추어 끝마친 곳을 알지 못한다.>고 하였다. 이것으로 볼 때에 정희량의 호 허암은 허암산에서 취한 것임을 알 수가 있다.
조선 중기의 문신 정희량은 본관은 해주, 자는 수부, 호는 허암, 철원부사 연경의 아들로 1469년(예종) 서울에서 태어났다. 사림파의 종조 김종직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1492년(성종23) 생원시에 수석으로 합격하였다. 1495년(연산군 1)에 문과에 급제하여 한림이 되었다가 연산군에 관한 소장을 지은 죄로 귀양가셨다.
그는 어려서부터 영특하여 20세에 초시과거인 생원에 장원하여 벼슬을 시작하였는데 높은 절개를 지켜 나쁜 사람과는 같이 있거나 말하는 것조차 싫어하였다.
또한 그는 글을 잘 지어 명성을 날렸고 특히 역학에 조예가 깊었다. 그가 벼슬을 하고 있을 때, 성종이 돌아 가셨는데 허암은 복을 입고 성균관 유생들을 거느리고 '성종을 위하여 불사를 한다'고 글을 지어 올렸는데 그 글이 문제가 되어 귀양보내 졌다가 얼마 후 풀려났다.
1496년(연산군2) 김전.신용개.김일손 등과 함께 사가독서가 될 정도로 문명이 있었다. 1497년 예문관 대교가 되어 임금이 마음을 바로잡아 경연에 근면할 것 등 열가지, 소를 올린 바 있다.
다음 해 선무랑.행예문관봉교로서 <성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무오사화 때에는 사초문제로 윤필상등에 의하여 신용개.김전 등과 함께 탄핵을 받았는데, 난언을 알고도 고하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장 100대, 유 3,000리의 처벌을 받고 의주에 이배되었다가 다시 김해로 이배되었다. 그는 유배중에 어머니상을 당하였는데 죄인이라서 집에 가지 못하였다.
이듬해 유배에서 풀려나 직첩을 돌려 받았으나 대간.홍문관직에는 임명될 수 없게 되었다. 그해 어머니가 죽자 고양에 있는 어머니 묘에서 시묘한 뒤 단오날에 종들을 모두 밖에 내보낸 다음 집이 빈틈을 타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었다. 집에 돌아온 종들이 허암을 찾아 헤맸으나 종적을 알 수 없었고 다만 한강 백사장에 그의 신 두짝만이 놓여 있을 뿐이었다.
사람들은 그가 빠져 죽은 줄 알고 강을 뒤졌으나 시체를 찾아내지 못하였다. 그때 그는 부평땅 서곶 검암동 허암산에 은거하다가 폭군인 연산군에게 알려지면 불리할 것을 알고 행방불명이 되었던 것이다.
총민박학하고 문예에 조예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음양학에도 밝았으며, 영달에는 마음이 없었다고 한다.
일설에는 개풍군 풍덕에서 수묘살이 하다가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후 정희량은 이천년으로 변성명하고 안동, 묘향산 등의 산사를 유람하다가 만년에 평안북도 정주군 심원동에서 생애를 마치었다고 한다. 현재 그의 후손이 평북 정주에서 월남하여 부평에 살고 있다.
정희량은 심성이 강직하고 영달하는 마음이 없었고 문장과 시에 능하고 음양학에도 밝았다. 정희량이 김포 강변에서 자취를 감출때 감긴 시가 전하여지고 있다. 그시에 적혀있기를 "해저믄 강상에 찬 물결 절로 이는데 쪽배는 이미 강가에 대어 있으되 밤사이 풍랑은 사납겠구나." 하였다.
그는 또 가천 원벽에다 써 놓기를 "새는 무너진 담구멍으로 보고 중운 석양에 샘물을 길네. 산과 물을 집으로 삼는 손님의 천지는 어디가 끝인고."하였다.
"어제 분 비바람에 놀라, 문명한 이때를 저버렸네. 괴로울지라도 간에서 놀고 있으니 시끄러움이 싫어도 시조차 짓지 않으련다." 이행이 이곳을 지나다가 이 시를 보고 허암의 시임에 틀림없다고 물으니 헌누더기를 입은 중이 조금전에 이곳을 지나갔다고 대답하였다.
일찍이 음양학에 정통한 그는 장안에 소문난 점쟁이들을 찾아가 점도치고 대화를 나누어 본 뒤 주부 오순형을 빼고는 전부 엉터리라 했다.
그는 또한 축지법에 능하여 어릴 때 그의 부친이 강원도에서 고을살이를 했는데 그 어느날 저녁을 먹고 나서 어머니 보고 "아버지 좀 뵙고 오겠습니다."하고 떠났는데 불과 몇 시간 후에 부친의 편지를 가지고 돌아와서 그 어머니를 놀라게 한 일이 있었다.
지금 검암동에 많이 살고 있는 해주정씨는 허암 정희량의 아우 정희신의 후손들이라고 한다.
정희량의 후손들이 함경도지방에 많이 살고 있는것으로 보아 그때 허암이 함경도 두메산골에 은둔하여 지낸 것으로 여겨 진다.
주소(위치) : 인천광역시 서구 검암동 산61-5
찾아오는길
인천지하철 2호선 검바위역 1번출구
시내버스
1,7,13,17-1,77번(서인천고교앞에서 하차하여 도보로 20분거리)
591번(서인천고교에서 하차, 도보로 10분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