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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가정지

  • 유형
    비지정문화유산
    연락처
    032-560-5932
  • 지정일
  • 소유자
    -
가정지는 가정동 456번지 4거리에서 서쪽 100m지점에 유적비가 세워져 있다.(루원시티 건설공사 후 현재위치(가정동 488-10)로 이전)
원래는 마을 안 동산위에 있었는데 도시계획의실시로 동산이 평지로 변하여 그 옛 지점을 찾아 비를 세웠다고 한다.
가정지는 조선조 개국공신인 조반의 별업(별장)인데 현재는 터전만이 남아 있다. <부평부읍지> 고적조에 <가정이 서곶면에 있는데 복흥군 조반의 별업이다>고 하였다.
조반이 이 곳에 별장을 경영한 1400년(정종2년)으로 추정되며 경영한 것은 이 곳이 외가(합천이씨)의 고장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부평부읍지>에 의하면 조반의아들 조서강이 이조 참판을 그만두고 말년에 이 곳으로 퇴휴하자 세종이 누차 다시 출사토록 소환하였으나 끝내 응하지 않았으므로 서공을 보내어 그가 사는 곳을 그림으로 그려서 바치게 했다.
그리하여 가정이 한때 명사들의 시제에 자주 오르게 되었는데 안평대군이 그 시들을 모아 화첩을 만들고 <석호가정별업도>라고 부왕인 태종께 바치었다. 조반(1341~1401)은 고려 말기인 공민왕때 12세의 나이로 아버지를 따라 연경으로 들어가서 매부 인평장에 의탁하여 한문과 몽고어를 배우고 승상 탈탈의 인정을 받아 그 곳에서 벼슬을 하였다. 귀국하여 우왕 8년(1382)에는 판도판서로서 정조겸주청사가 되어 명나라에 들어가서 왕의 시호 및 승습을 청하여 돌아왔으며 우왕 11년(1385)에는 사은사로서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 때 임견미와 함께 전횡을 일삼던 염홍방의 종 이광에게 토지를 빼앗기자 이광을 죽이고 그 집에 불을 질렀는데 염홍방이 그가 반란을 일으켰다고 무고하여 조반과 그의 가족을 옥에 가두었다. 그러나 염홍방의 행패를 미워하던 우왕이 최영, 이성계 등과 협의한 후 왕명으로 석방하고 염홍방, 임견미 등을 사형에 처하였다. 1389년에는 공양왕의 즉위를 알리기 위하여 명나라에 다녀왔다.
1392년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할 때 공을 세워 개국공신 2등으로 복홍군에 봉해졌다. 태조 6년(1397)에는 정조사가 되어 명나라에 들어가다가 사동반도의 등주에게 제지를 받고 되돌아왔다. 조반은 조선조에서 지중추원사.판중추원사를 거쳐 삼찬문하부사로 있다가 태종 1년(1401)에 세상을 떠났다.
비문에 가정지라 한 뒷면에 이곳에 만년을 즐겼던 이조참판 조서강이 읊은 자음시가 세겨져 있다.
승한승일도촌가 십리방교만수화
반취기려무사객 태평춘홍자감과
한가한 틈을 타서 날씨 좋은 날 촌가에 이르니 아름다운 십리 넓은 들판에 여러가지꽃이 피어 있구나.
얼근히 취하여 나귀타고 돌아올제 태평성대의 춘흥이 절로 나는구나.
가정지 사진
  • 가정지 사진1

주소(위치) : 인천광역시 서구 가정동 488-10

찾아오는길

시내버스 : 7,12,13,14,17-1,28,77,103,105,591번 (가정5거리에서 하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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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당팀 : 가정1동
  • 전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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