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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en 서구 12월호(240호)

  • 제목
    생활법률-반품절차, 사진속의 서구 61-애국투사 심혁성
  • 작성부서
    홍보팀
    작성일
    2016-11-25
    조회수
    583

<생활법률

 

반품절차

 

Q : TV홈쇼핑을 통해 냉장고를 할부 6개월 신용카드로 구입했습니다. 그런데 디자인과 성능이 마음에 들지 않아 반품을 하고 싶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TV홈쇼핑 등의 방법으로 물건을 거래 하는 경우 물건을 산 사람은 7일 이내에 이를 철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물건이 광고의 내용과 다르거나 물건에 흠이 있는 경우는 3개월 이내, 또는 그 사실을 안 날 또는 알 수 있었던 날로부터 30일 이내에 철회하고 대금을 돌려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대금을 2개월 이상의 기간에 걸쳐 3회 이상 나누어 내는 거래를 할부거래하고 하는데 요즘 신용카드를 이용한 할부거래가 대부분의 경우를 차지하기 때문에 현금가격 및 할부기간이 적힌 신용카드 전표를 발급받은 날 또는 받지 못했을 경우에는 물건을 받은 날로부터 7일 이내에 할부 계약을 철회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본 사안의 경우 질문자는 냉장고를 산 날 또는 냉장고를 받은 날로부터 7일 이내에는 계약을 철회하고 대금 지급을 거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만 사용을 함으로써 그 가치가 많이 감소할 우려가 있는 물건이거나, 소비자가 실제로 이를 사용하였거나, 설치 등에 전문 인력 및 부속 자재가 투입되는 경우, 할부 가격이 10만원 이하인 경우, 소비자의 잘못으로 물건이 없어지거나 파손된 경우에는 소비자가 계약을 철회할 수 없다는 점은 인지하여야 합니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하여 계약이 철회되면 소비자는 지체 없이 물건을 반환하고 판매자는 이미 받은 할부금일지라도 반환하여야 합니다.

 

법률사무소 국민생각 변호사 김종호

 

서구 무료법률상담실 운영안내

 

일       시 : 매주 월요일 14:00 ~ 16:00 (, 공휴일 제외)

장       소 : 서구청 1층 민원봉사과 내

상담대상 : 서구 주민, 관내기업체 운영자 등

상담분야 : 행정, 민사, 형사, 가사 등 전분야

법률상담관 : 변호사(대한가정법률복지상담원 강화·서인천지부 소속) 564-1369

상담방법 : 방문상담

 

문의) 기획예산실 법무팀 560-4063 대한가정법률복지상담원 564-1369

 

 

[사진 속의 서구 61]  

애국투사 심혁성

 

 

심혁성(沈爀誠 1888~1958) 본관은 풍산(豐山). 계양면 오류리 출생으로, 일명 심복여(沈復汝)로 불렸다. 어려서 한학을 수학했다. 31운동 당시 계양면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324일 계양면 장기리 시장에서 300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다 주동자로 일경에 체포되었다. 황어장터 만세운동으로 알려진 이 시위는 인천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컸던 독립 만세 운동이었다. 1919101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8월형을 선고받고 상소하였으나 기각되어 13월의 이상의 옥고를 치렀다. 출소 후 수십 년간 약초를 캐며 은둔 생활을 하다 만년에 백석동으로 돌아와 생을 마감했다고 하나, 이후에도 계속 독립 운동에 참여하여 19213월 출소하자 천도교도인 장동호와 함께 서울에서 암중모색하다 일제의 감시를 피해 그 해 7월 북만주 흑룡강성으로 망명하여 신민부에 가담하였고, 한편으로 독립채권을 매입하여 군자금으로 사용하도록 하는 등의 활동을 계속하였다고 한다. 1990년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심혁성은 부평 백석동 출신이다. 계양(桂陽) 지방으로 이주해 살았으며 천주교 신자였다. 19193·1운동을 주도하였으며, 만세 시위운동을 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형을 살았다. 출감 후 가산을 어려운 사람들에게 모두 나누어 준 다음 자신은 산속으로 은신하여 약초를 캐먹으며 연명해 갔다. 그 뒤 만주로 건너가 본격적인 독립 운동에 가담하였다. 광복이 되어 고향에 돌아와 살았으나 정계에 진출하지 않고 조용히 생애를 보냈다.”

앞의 글은 서구사에 나오는 심혁성 관련 내용이고, 뒤에 것은 인천시사의 내용이다. 시사에 나오는 다른 설명을 더 보자.

부천군 계양면 장기리에서는 324일 오후 2시에 심혁성(沈爀誠) 등이 주동이 되어 장터에 있던 3백여 명의 군중과 태극기를 휘두르며 만세 시위를 하였다. 때마침 부내 주재소 경찰 4명이 이곳을 경계하다가 만세 시위가 일어나자 심혁성을 끌고 면사무소로 들어갔는데 면사무소에서는 심혁성을 놓아주도록 타일렀으나 일본인 경찰이 주재소로 데리고 갔다. <중략> 임성춘이 일본경찰들에게 심혁성을 놓아줄 것을 요구하는 한편, 군중들은 심혁성을 데려오기 위해 경찰들과 실랑이를 벌이는 과정 속에서 이은선이 칼에 맞아 자리에서 숨졌다.”

기록들을 살펴보건대, 심혁성은 인천지역에서 일어난 3·1 독립만세 운동을 주동한 인물이 분명하다. 다만 그의 출생이 계양면 오류리로 또는 부평 백석동으로 표시하고 있는 점이 상이할 뿐이다. 혼란을 느끼게 되는 것은 게양면이라는 구역명인데 이것은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을 통합할 당시 행정명을 그대로 표기했기 때문이다. 오류동은 오늘날 서구 검단5동의 법정동으로 남아 있다. 다만 심혁성의 출생지가 백석동인지, 오류동인지 하는 것인데 여기 대해서는 세밀한 연구가 있어야 할 것이다. 심혁성은 서구 출신으로 일제에 대항해 옥고를 치른 애국투사이다. 경건한 마음으로 기리고 만대에 기념할 분이다.

 

김윤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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