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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en 서구 7월호(제247호)
‘삽앙상황(揷秧狀況)’

긴 봄 가뭄 탓에 농부들의 시름이 깊다는 소식을 듣는다. 며칠 전 비가 뿌려 지역에 따라서는 타들어가는 갈증을 다소나마 해결했다지만, 아직도 상당 지역이 모내기를 위해서 턱없이 부족한 물에 목말라 하고 있다. 티브이 화면도 찰랑찰랑 물이 찬 논 대신에 검게 드러난 흙바닥을 비춘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앞으로 더욱 봄 가뭄이 심해질 것이라는 말도 있어 걱정이 앞선다.
사진은 1930년대 검단 여래 지역 모내기 광경이다. 산그늘이 논바닥 물 위에 내려와 앉아 사뭇 평화로워 보이지만 역사를 돌아보면 그렇게 마음 편하게 사진이 보아지지 않는다. 1920년대 일제는 저들의 부족한 쌀을 조달하기 위해 우리나라에 산미증식계획(産米增殖計畫)을 세운다. 1930년대에 들어와서는 역시 저들의 정책에 따라 그때그때 미곡 증감 정책을 편다. 특히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키면서는 더욱 미곡 증산에 박차를 가했다.
이 사진의 촬영 시기가 1930년대라고만 되어 있어 더 자세히는 알 수 없으나 일제가 벌인 증산 정책의 일환으로 촬영된 것으로 보인다. 사진 하단 중앙에 “農民紀日揷秧狀況(농민기일삽앙상황) 黔丹面(검단면)”이라는 기록이 그러한 혐의를 짙게 한다. 사진 촬영 주체가 검단면 관청이기 때문이다. 사진 중앙에 농기(農旗)가 우뚝 선 것으로 미루어 얼핏 마을 모내기 두레처럼 보이지만 동원된 학생들로 꾸며진 행사이다. 우리 풍습, 정서에 동조하는 태도를 보이면서 쌀 증산의 과실을 따려는 것이다. 그것이 일제의 복심(腹心)이었다.
사진 왼쪽 논둑에 전원 한복을 입은 여학생들과 그 오른쪽으로 모내기 작업을 관람하고 있는 남학생들, 모내기가 거의 끝나가는 논 안에 드문드문 허리를 펴고 서 있는 교사와 마을 유지들, 그리고 엎드려 열심히 모를 심고 있는 고학년 남학생들. 익숙하지 못한 학생들 솜씨여서 못줄이 삐뚤빼뚤하고 열도 제대로 맞지 않는다.
아무튼 ‘삽앙’이라는 말은 ‘논에 모를 꽂는다’는 뜻으로 ‘삽앙상황’은 그러니까 모내기 상황을 의미한다. ‘기일(紀日)’은 사전에 없는 말로 아마도 ‘기념일’을 그리 쓴 것이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1930년대에 촬영된 이와 비슷한 학생 동원 모내기 사진에는 ‘농민기념’으로 적혀 있기 때문이다. ‘농민기념’ 이 말을 오늘날의 식으로 고치자면 ‘농민체험기념’ 정도가 될 것이다.
1930년대라면 최소한으로 잡아도 70년을 넘거나, 혹은 지금으로부터 거슬러 80년도 더 지날 수 있는 시기이다. 그때 모내기 사진 한 장을 보면서 문득 거기에 서려 있는 우리 역사를 생각해 보게 된다. 그리고 사진 속 논과는 달리 메마른 논, 가뭄에 시달리는 농민들의 애타는 마음을 헤아려 본다. 올해는 극심한 봄 가뭄에 여름 장마마저도 더디 온다고 한다. 게다가 그 장마 기간조차도 예년에 비해 짧을 것이라고 하니 강수량은 더욱 적을 것이다. 물 부족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참으로 근심이다.
김윤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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