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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en 서구 12월호(240호)

  • 제목
    물의 도시, 청라
  • 작성부서
    홍보팀
    작성일
    2016-11-25
    조회수
    648

 

물의 도시, 청라

 

사람과 시간의 힘

인천지하철 2호선을 타고 가정역에서 내렸다. 버스를 기다리는데 다가오는 빈 택시가 있어 재빨리 잡아탔다. 웬만해선 택시가 있을 것 같지 않은 곳이라 괜스레 횡재한 기분이었다. 택시기사는 청라국제도시 주민에게 콜을 받아 공항철도 청라국제도시역과 인천지하철 2호선 가정역을 중심으로 운행한다고 했다. 여기는 길이 밀리지도 않고 손님이 많아 벌이가 좋다는 것이다.

저처럼 청라국제도시 주변만 뱅뱅 도는 기사가 적어도 십여 명은 되는 걸로 압니다.”

틈새시장, 황금노선을 주름잡으며 만족스러워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오죽하면 강남 서초동 가자는 장거리손님보다 이쪽에서 운행하는 걸 더 좋아하겠는가 말이다. 청라에서 가장 볼 만한 곳을 추천해달라고 하자 겸연쩍게 웃으며 말했다.

호수공원이나 커널웨이에 가는 손님을 많이 태우기는 했어도 저는 아직 못 가봤습니다.”

일반적인 가장의 모습이다, 밥벌이를 찾아 부지런히 움직이나 정작 자신은 휴식을 취할 여유가 없는. 어쨌든 장기화된 불경기로 오나가나 울상인 요즈음, 신바람 나서 핸들을 잡는 운전기사를 만나 덩달아 유쾌해졌다.

삼사 년 전만 해도 청라는 유령도시란 별명으로 불렸다. 아파트는 하늘을 찌를 듯 올라갔지만 입주민이 적어 밤이면 깜깜해서 그리 불렸다. 하지만 이젠 물의 도시 베니스 저리 가라로 운치 있는 도시가 되었다. 호수공원과 커널웨이가 도시 중심부에서 낭만을 부르고, 놀이시설이나 휴식공간이 요소요소에 있어 현지 주민뿐 아니라 외지에서도 일부러 찾는다고 들었다. 아이들 손을 잡고 오는 가족은 물론 청춘남녀의 데이트 장소로도 각광받고 있다고.

신도시라는 게 어디나 그렇듯 초기엔 유명세와 달리 쓸쓸하고 불편하다가 사람들이 채워지면서 힘을 받는다. 결국 도시가 발전하는 건 사람과 시간의 힘이라는 얘기다. 사람과 시간의 힘으로 번성한 청라국제도시에 드디어 발을 디뎠다. 호수공원이었다.

 

피노키오를 따라온 겨울 동화

겨울로 들어선다는 입동이 지났지만 날이 유순해 산책하기엔 괜찮았다. 왼편으로 각종 놀이시설이 보였다. 벤치에 앉아 보온병에서 따끈한 차를 따라 마시는 가족이 보였다. 젊은 엄마와 미취학 아동 둘이었다. 다가가 동네 주민이냐고 묻자 고개를 젓기에 어디서 오셨냐고 물었더니 논현동에서 왔단다.

끝에서 끝으로 오셨네요. 날도 추운데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어요?”

지난 일요일에 아빠랑 같이 왔었는데 아이들이 또 가자고 보채서요.”

이번엔 아이들에게 눈을 맞추며 물었다.

왜 또 오고 싶었어?”

피노키오와 놀려구요.”

피노키오? 그제야 사방을 둘러보았다. 놀이시설 한쪽에 대형 호박덩이 같은 피노키오가 보였다. 머리 꼭대기엔 바람개비가 돌고, 눈은 세모랑 별 모양으로 짝짝이고, 원통형 빨간 코를 쑥 내민 피노키오였다. 피노키오 옆구리엔 밀폐형 미끄럼틀이 달려 있었다. 피노키오 얼굴로 들어가 왼쪽 볼로 미끄러져 나오는 구조였다. 이 아이들에게 청라호수공원의 피노키오는 유년의 추억으로 영원히 저장될 것이다. 논현동에서 청라까지 피노키오를 따라온 세 모녀, 이들이야말로 초겨울 오후에 마시는 한 잔의 카모마일처럼 따뜻한 동화이지 싶었다. 아이들 놀이터는 아이들 시각으로 좀 더 많은 동화 주인공을 끌어들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호반의 도시

청라호수공원은, 다양한 문화형태를 담아내는 세 개의 섬, 다양한 물의 이용을 통한 친수공간으로 조성된 공원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호수공원 전체를 연결하는 순환동선은 에코존, 전통존, 레저존, 아트존이다. 이 네 개의 공간을 결합해 과거, 현재, 미래를 잇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고 했던가? 주요시설로는 생태공간, 전통공간, 레저공간, 예술공간, 음악분수 등이 있다. 다 돌아보지는 못했지만 인상적인 몇 가지는 부러웠다.

천편일률적으로 빽빽하지 않고, 적당히 공간을 비워 하늘을 내주는 아파트야 업그레이드 된 계획도시니까 그렇다 치고, 도심 속 호숫가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는 비현실적이란 느낌마저 들게 했다. 여기 주민들은 가을을 느끼러 굳이 멀리 나가지 않아도 되는 특혜를 누리는 것이다. 갈대가 어디 한 군데만 있는 게 아니라 호수 가장자리로 계속 이어졌다. 게다가 가끔씩 넓게 퍼진 갈대밭은 가을 사진 찍기에 안성맞춤이었다. 호수에 비친 고층건물과 갈대들이 함께 흔들리는 이색적인 풍경에 한동안 도취했다.

호숫가엔 인공 백사장도 있었다. 선탠을 즐기게끔 선베드가 나래비로 놓여 있는 걸 보며 참 세심하게 계획한 도시구나,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놀이 철이 지나 수상 레저는 문을 닫았다. 수상택시, 카누, 카약, 패밀리보트 등 다양한데 가격은 그다지 비싸지 않았다. 수상택시 30분 이용에 대인 6,000원 소인 3,000, 카누와 카약은 승선인원 3인이 50분 이용에 25,000원이었다. 때문에 시즌인 여름철엔 예약을 해야 한다니 그 인기가 대단한 모양이다.

본래 바다가 드나든 섬이었던 청라도. 해안 매립으로 육지가 된 청라도(菁蘿島)는 섬의 모양이 담쟁이덩굴처럼 우거졌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연안일대 수심이 얕아 물고기의 훌륭한 산란장이었다고 한다. 해서 수많은 강태공들에게는 추억의 낚시터로 기억되고 있다.

바다를 메워 육지가 된 후, 다시 물을 끌어들여 호반의 도시가 된 청라! 아파트가 불을 밝히는 어둠이 오면 지상의 불빛과 호수에 비친 불빛이 데칼코마니가 되어 또 얼마나 아름다운 야경을 연출할 것인가. 호반의 도시 주민들이 누리는 특혜를 생각하자 더욱 부러워졌다.

 

수크령 찾는 재미

그뿐인가? 너무나 반가운 식물도 만났다. 수년 전 을왕리 논둑에서 처음 보았던 수크령이다. 수크령은 벼과 식물로 우리가 자주 만나는 강아지풀과 비슷한데 강아지풀보다 훨씬 크다. 개화기인 늦여름에는 연보라에서 붉은자주빛으로 환상적인 꽃을 피운다. 처음에 필자는 이름을 몰라 왕강아지풀이라고 불렀는데 한참 지나서야 그 이름이 수크령이라는 걸 알았다.

수크령은 주로 하천이나 제방 등에 주로 심는데 경사면의 흙이 흘러내리는 걸 방지하는 데 효과가 있어서다. 최근 유럽이나 북미에서 도입한 귀화식물로 도로 비탈면을 피복하는데 고유종 수크령으로 대체하면 좋겠다는 의견도 많다. 또한 수크령이 수방식물로 각광 받는 건 물을 정화하는 기능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수크령은 벼가 한창 여물어 갈 때, 농촌 들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화본형(禾本型) 여러해살이풀이로 긴 브러시 모양의 꽃이삭이 눈길을 끈다. 땅속줄기가 짧아서 탄탄하게 무리를 이루고 사는데 억세고 질겨 잎이나 꽃대를 손으로 뜯으려다가는 손을 베이는 낭패를 당하게 된다. 수크령의 일본명 찌까라시바(力芝)힘센 풀이란 뜻이다. 예리한 낫으로 강하게 내리쳐야 벨 수 있다니 눈으로만 감상해야 하는 것이다. 좀 더 가까이서 감상하고 싶다면 질항아리에 심어 감상하는 방법도 있다. 수분만 보장되면 잘 자라므로 향수를 달랠 수 있는 훌륭한 화훼자원이라 하겠다.

한글명 수크령은 그령을 암그령으로 삼고, 이에 대응하는 것에서 생겨난 이름이다. 억센 식물체와 꽃이삭의 모양에서 수컷 그령이라는 뜻이 되는 것이다. 서식처도 미묘하게 다르다. 그령은 농로 한가운데 밟히는 곳에서도 살지만, 수크령은 주로 밟히지 않는 가장자리에서 산다. 그령의 잎은 부드럽고 질겨서 밟혀도 잘 끊어지지 않는데 반해 수크령 잎은 그저 억세기만 해서 밟히면 세포조직이 부서지고 마니 생존법칙을 따라 그리 되었나 보다. 수크령이란 이름이 있기 전에 길갱이란 한글명이 기재된 바 있다. 길가에 힘세고 질긴 놈이 살고 있어 그랬나 보다.

갈대 사이로 군데군데 무리를 이루고 있는 수크령 찾는 재미에 폭 빠져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때가 늦어 여우 꼬리에 보랏빛 물을 들인 듯 판타스틱한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뒤늦게라도 만난 게 그저 반가웠다. 내년엔 수크령이 환상적으로 핀 늦여름에 와야겠다고 생각하며 발길을 커널웨이로 돌렸다.

 

개천을 산책하다 즐기는 식도락

청라 커널웨이는 운하라기보다 개천이었다. 서울의 명물이 된 청계천은 복개천의 뚜껑을 열고 다시 살려낸 개천이지만 여긴 바다를 메운 뒤 육지를 파서 만든 개천이었다. 청계천 복원 11년이 지난 지금 그곳엔 팔뚝만 한 잉어를 비롯해 수많은 어종이 유유히 오르내려 부러웠는데 청라 커널웨이에는 송사리들이 유영하고 있었다. 송사리라도 움직여줘서 다행이었다. 좀 더 시간이 흐르면 여기도 더 많은 종류의 물고기들이 꿈틀대지 않을까 기대된다.

각기 다른 모습으로 모양을 낸 몇 개의 다리를 지나자 네 명의 악사들이 익살스런 표정으로 공연하는 재미있는 동상을 만났다. 날 좋은 주말이면 작은 공연이 줄지어 있을 법한 야외공연장이었다.

각양각색의 다리도 좋지만 청계천처럼 간간이 돌다리도 놓이면 더 운치 있지 않을까 생각하다 곧바로 수정했다. 철이 지난 지금은 운행이 중단됐지만 제철에는 카누가 지나다녀 돌다리를 놓을 수 없었으리라. 끝이 어딘지 모를 인공수로를 여유롭게 산책하는 것은 물론, 카누체험교실에서 단돈 3,000원으로 사전교육을 받고 카누를 타볼 수 있는 커널웨이. 생각할수록 매력 만점의 거리였다.

커널웨이를 사이에 두고 양 옆으로 늘어선 먹자거리는 산책 후 식도락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다양한 식당과 술집이 있어 취향대로 골라먹을 수 있다. 청라에 사는 한 친구는 주말이면 늘 이곳에 와서 외식을 즐긴다고 했다. 다만 커널웨이 전체가 금연구역이라 여기 머무는 동안은 비행기 안이라 생각하고 담배는 잊어야 한다.

커널웨이에서는 쉬어가는 곳이 인상적이다. 나무 한 그루가 심겨 있고 그 가장자리가 빨간색 육각형으로 사람이 앉을 수 있게 되어 있다. 나무 한 그루를 등지고 최대 12명이 휴식을 취할 수 있으니 가성비 최고라 하겠다. 게다가 이동도 가능해 보이는 아이디어 상품이라 자꾸 눈이 갔다.

시골집 마을 앞을 지나는 개천처럼 만만하고 편안해 보이는 커널웨이는 호수공원과 연결되어 있다. 헌데 날이 저물고 기온이 떨어져 다음을 기약할 밖에 없었다. 커널웨이 수변에서도 갈대가 흔들렸고 길가엔 빨갛게 물든 화살나무가 마지막 열정을 불태우고 있었다. 모든 생명의 원천은 물이다. 사람도 물이 없으면 살 수 없고, 태아 때는 양수 속에서 성장한다. 물의 도시 청라의 미래가 밝은 이유는 물을 끌어들인 때문 아닐까 싶다.

  소설가 김진초/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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